목회칼럼
<단순한 사람>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챨리 채플린. 이처럼 세상 그 누구도 항상 좋은 일만 있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남모를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때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의 사역에서 이에 관해 영감을 받습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18:1). 엘리야가 가뭄 해지를 선언하라는 명을 받은 때는 물의 근원을 찾아가야 할 만큼(왕상18:5) 절망적인 때였습니다. 이런 때에 비가 온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은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자신이 선포한 대로 되지 않는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삼년 전에 성령이 감동하자 그대로 아합 왕에게 ‘가뭄의 심판’을 선언했듯이, 이제 다시 성령이 감동하자 인간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가뭄의 해지’를 선언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시116:6). 여기 ‘순진한 자’를 NIV 영어 성경에서는 ‘the simple’이라 번역합니다. 엘리야는 시인이 말하는 ‘단순한 사람’으로, 하나님은 이런 마음으로 행하는 자를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가뭄 해지의 말씀이 임하는 순간 엘리야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두 가지 일을 합니다. 먼저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상대로 갈멜산에서 영적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두고 그들을 처단합니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왕상18:40). 이들은 그 땅에 긴 가뭄이 들게 한 장본인들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도록 한 악인들로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들을 진멸한 것입니다. 다음, 아합 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왕상14:41)라고 가뭄이 끝날 것을 선포합니다. 엘리야는 어떻게 마른 하늘에서 큰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까? 남들보다 청력이 좋아서 들을 수 있었습니까? 비를 구하되 ‘단순한 마음’으로 구한 그는 믿음으로 ‘큰 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면 가만히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겔36:37-38). 이 말씀은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약속하고 시행할 것을 확인하신 후 한 명령입니다. 엘리야는 이처럼 말씀이 그에게 임하자 순수하게 ‘큰 비’를 기대하며 갈멜산으로 올라가서 기도한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갈멜산은 승리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가 있습니다. 갈멜산에 올라간 엘리야는 무릎 사이 얼굴을 파묻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응답을 하셨습니다. 불로 응답받은 곳에서 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불과 물의 응답을 받았다는 사실은 영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이는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기도로 임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경제가 가물어있지 않습니까? 건강이 가물어 있지 않습니까? 심령이 가물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왠지 심령이 컬컬하고 삶이 답답하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큰 비가 임하여 가뭄에서 벗어나기 원한다면 엘리야 같이 ‘단순한 사람’이 되십시오. 약속을 믿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큰 비로 응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