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 윤석렬 후보가 고국의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이 결혼 10주년이었다는데, 암튼 이 분은 스토리가 많습니다. 9번 도전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도 그렇고, 늦은 나이에 결혼한 그가 10년 만에 대통령이 된 것도 그런데 그가 대통령이 되자 항간에 떠도는 말이 있습니다. “윤석렬이 부인을 잘 만나서 대통령이 된 것인가, 부인이 남편을 잘 만나서 영부인이 된 것인가?”

이와 관련된 오래전 조크 하나를 소개합니다. 클린턴 대통령 내외가 힐러리의 고향 마을을 방문했을 때, 한 주유소를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힐러리와 절친한 사이였던 남자 친구가 운영하는 주유소였습니다. 힐러리와 남자 친구가 반갑게 해후하는 모습을 본 클린턴이 돌아오는 길에 한 마디 했습니다. “당신 사람 잘 만나서 오늘의 영광을 얻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해! 만약 저 사람을 만났으면 기껏해야 주유소 사장 마누라 밖에 더 되었겠어!?그러자 힐러리가 지지 않고 응수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만약 저 사람이 내 남편이 되었다면 오늘 미국 대통령은 당신이 아니라 바로 저 사람이 되었을 거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 그런데 빌립의 말을 듣던 나다나엘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영 시큰둥했지요. 그래서 반문한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 그러나 빌립도 포기하고 나다나엘에게 말했습니다.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1:46). 빌립은 자신이 메시야로 확신한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예수를 주로 믿게 된 과정을 생각하니, 그게 말로 설명해서 될 일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러지 말고 와 보라”고 강력하게 청한 것입니다. 그러면 빌립의 초청을 받고 그렇게 빈정댔던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빌립이 강요하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삶에서 이전과 다른 어떤 변화를 보았던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과거 모습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빌립의 모습이 전혀 새롭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외적 모습은 그대로지만 내적으로 풍기는 태도에서 큰 변화의 기운이 확실히 느껴진 것입니다. 이렇게 빌립의 변화된 모습이 나다나엘로 하여금 예수님께 관심을 갖게 하여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예수님과 몇 마디 나눈 후, 놀랍게도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는 위대한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 고백은 바리새인 등 유대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고, 로마 당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수 있는 고백이었으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강력한 힘에 이끌려 이런 고백을 한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구원에 이르는 이런 믿음을 고백한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가 여기에 이르는 데에는 빌립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변화에서 힘이 느껴지는 진정성을 보았고, 그 힘에 이끌려 주께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영적으로 등대의 역할을 충실히 한 것입니다.

오래 전, 펜실베니아에서 경비행기가 한 대가 야산 중턱을 비행하던 중 추락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교단에서 운영하던 수양관에 세워진 철탑 십자가에 부딪혀 추락한 것입니다. 평소 경비행기 조종사들에게 등대역할 해 주던 십자가가 화를 초래한 것입니다. 불이 켜진 십자가는 길을 지시하며 생명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지만, 불 꺼진 십자가는 길을 가로 막아 귀한 생명을 앗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불현듯 찾아들 때를 대비하여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살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심령에 예수 생명의 빛을 환히 밝히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에 대해 편견 있는 이들에게 그 분의 아름다운 실체를 전하는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