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첫 주일 예배, 함께 하는 우리 앞에 하얀 화선지 같은 한 해가 다시 펼쳐졌습니다. 이 위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올해도 변함없이 마주하게 될 숱한 선택의 귀로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달렸습니다. 사람들은 매년 새해를 맞이할 때 각각 다른 꿈과 비전을 가지고 엽니다. 그래서 그들이 순간순간 선택하며 그리는 인생의 그림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해를 주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같은 마음이십니다. “나와 동행하자!”는 것입니다. 지난 해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성공했다고 교만하지도 말며 새해에도 다시 ‘동행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혹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 가운데 새해 벽두부터 근심과 걱정에 눌려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삶 자체가 힘들어서 피곤해 하는 분은 없으십니까? 앞길이 막막하여 한 숨만 나오는 분은 없습니까?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 열매 맺지 못하여 낙심한 분은 안 계십니까? 사람들의 비방과 멸시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출33:14)는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모세를 향해서만 하신 말씀이 아니고 모든 이스라엘을 향해서 주신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택한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예수님도 같은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살다보면 높은 정상에 올라갈 때도 있고, 깊은 골짜기로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골짜기에 있을 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와 ‘이러다 내가 죽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때라도 주님을 부른다면 주께서 모든 두려움을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남플의 2022년도 표어는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입니다. 이는 주께서 낙타비유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강조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비유를 들은 제자들은 깜짝 놀라서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정말로 부자는 다 천국에 못 들어가는 걸까요? 천국에는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부자는 없고 가난뱅이만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주님께서 부자의 기준을 제시하셔야 했습니다. 한 예로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매년 학교에서 가정형편 설문조사를 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 당시 우리들이 부자로 인정한 집은 이층집에 전화와 TV가 있고 식모가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준을 오늘에 그대로 적용하면 아마 대부분 부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자란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적 개념의 부자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물질에 종속된 사람인지 물질을 다스리는 사람인지로 판단한 것인데, 전자의 경우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부자’로 규정하신 것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신년 특집으로 사람 키만한 큰 바퀴를 가진 트럭이 장애를 뛰어넘는 경기를 방영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트럭의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는 그 앞에 아무리 큰 장애가 있어도 결코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퀴가 집채만큼 크니까 줄지어있는 자동차를 넘어가고 엄청나게 큰 장애물도 굉음을 뿜어내며 넘는데, 보는 내내 통쾌한 느낌이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 2022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앞에는 여전히 물리적 어둠과 영적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있지만, 믿음의 선진들처럼 주와 동행하기로 선택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영생의 소망을 주시며 팬데믹의 긴 터널도 안전하게 지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큰 믿음의 바퀴를 장착할 수만 있다면 우리 앞을 가로막는 그 어떤 장애물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커지고 하나님이 작아지는 삶에서 평안을 찾지 못합니다. 두려움만이 가득한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나는 작아지고 하나님이 커지는 삶에는 세상에 무서운 것도 부러운 것도 없습니다. 주와 동행하는 자에게 주께서 큰 믿음과 능력을 주시며 그 삶을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