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4/24)

“겨자씨 한 알”

2015년 ‘미스 우크라이나’에 선정된 아나스타샤 레나는 러시아의 침공이 본격화하자 자원입대 했습니다. 지난 9일, 라이브 방송으로 “러시아군에 잡혀서 성폭행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레나는 “이런 경우에 대비해 수류탄을 품고 있다”며 “그들은 지옥을 볼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렇게 목숨 걸고 자신의 나라를 지키려는 여성이 3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러시아라는 골리앗이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자기 병기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14:6). 이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사울 왕 초기에 블레셋 대군이 몰려와 전쟁을 치룰 때 일화입니다. 그 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성령에 감동되어 블레셋 진영으로 침투해 들어가면서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는다고 병기든 소년에게 선포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마13:31). 예수님은 천국을 금 은 보화에 비유하지 않고 겨자씨에 비유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천국은 어떤 공간이 아니라, 생명체가 자라듯 변화를 이루며 성장해 가는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콩 알 만한 다이아몬드 반지와 실제로 콩 한 알이 있다고 할 때 어느 것을 택하시겠나요? 당장의 물질적 교환가치만 생각하면 이런 질문은 하나마나 한 우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적 차원에서 본다면 한 알의 콩이 갖는 가치가 다이아몬드 반지 보다 높은 것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고정적인 물질적 가치,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거나 적다는 표현을 할 때 ‘눈곱만하다’‘코딱지 만하다’는 등의 표현을 씁니다. 이는 지저분할 뿐 아니라 부정적인 면이 강조된 표현으로 우리의 민족성을 담고 있습니다. 즉, 우리 민족은 적고 작은 것을 무시하고 소홀히 하는 그런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반면 유대인들은 본문에서 보듯 작은 것을 묘사할 때 습관적으로 겨자씨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겸손하면서 동시에 긍정적이며 생산적인 표현으로 그 민족성을 엿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즉, 그들은 현재는 적고 미약하나 주 안에 있을 때 성장할 가능성을 보며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적거나 작다고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고, 주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1967년, 이스라엘을 둘러싼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로 단합하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북쪽의 시리아, 동쪽의 요르단, 남쪽의 이집트는 이스라엘보다 몇 배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들이었고 그 뒤에는 소련의 지원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스라엘군 지휘부는 6일 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7일째에 안식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실제로 6일만에 승리를 선언하였습니다. 여리고 전쟁, 기드온의 전쟁 기적의 종합판 같은 이 6일 전쟁 승리의 원인은 무어일까요? 고난의 역사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그들 안에 살아 있는 겨자씨 같은 믿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수를 보고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외적인 조건을 보고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심령에 겨자씨 같이 생명 있는 믿음이 있는가를 보시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300 용사들 속에 있는 생명 있는 믿음을 보시고 12만의 미디안 대군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단 속에 있는 생명 있는 믿음을 보시고 블레셋 군대를 흔들어 놓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 속에 있는 생명 있는 믿음을 보시고 골리앗과 그 군대를 멸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생명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세상 사단마귀를 물리치시고 천국을 건설해 나가십니다.